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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서평)

서평: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by 머니바다 2024.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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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 서평


살다 보면 잊고 지내는 것들이 참 많다. 대단한 것만이 중요한 줄 알고 작은 일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한다. 그런데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정말로 우리 삶을 지탱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사소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올해 마흔여섯이 되었고, 가족과 일을 챙기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잊고 지냈던 가치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책의 배경과 이야기에 대하여


이 책은 1985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빌은 석탄을 배달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평범한 가장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얼핏 보면 단조로운 일상처럼 보일 수 있지만, 키건의 글은 단순한 나열에서 멈추지 않는다. 빌은 석탄 배달 중 마그달레나 수녀원의 여인들과 그들이 겪는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이야기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도덕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빌이 마그달레나 수녀원을 방문하는 장면이었다. “모든 것은 정적 속에 가라앉아 있었고, 그 안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실이 숨어 있었다.” 이 문장이 책의 핵심을 관통한다고 느꼈다.

수녀원에 갇힌 젊은 여성들이 처한 상황은 우리 모두가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이었다. 그 시절 아일랜드 사회에서 가난한 여성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교회와 사회로부터 버려졌다. 빌은 이 사실을 알게 되며 고민한다.

그리고 내가 가장 감동을 받은 것은, 그는 비록 가난하지만 이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빌의 선택, 그리고 그 울림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공감한 부분은 빌의 인간적인 고뇌였다. 그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었다. 사실 빌은 자신의 삶조차 녹록지 않은 인물이다. 홀로 네 딸을 키우며 크리스마스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려 애쓰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어려움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내가 이 일을 모른 척하면, 앞으로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무엇이 될 것인가?” 빌의 이 질문은 나를 멈춰 세웠다.

나는 지금까지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른 척하고 지나쳤던가?

내가 외면했던 것들이 사실은 내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지 결정했을 텐데 말이다.

빌은 결국 수녀원 소녀들을 돕기 위해 크리스마스 준비를 위해 아껴둔 석탄을 내놓는다. 그 장면에서 나는 왠지 모르게 목이 메었다. 그건 단순한 연료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빌의 행동은 한 사람의 선의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나 역시 딸을 둔 아버지로서, 그 순간 빌이 느꼈을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 같아도, 누군가의 작은 행동이 희망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믿고 싶었다.

클레어 키건의 문장과 이야기의 힘


키건의 문장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긴 설명 대신, 꼭 필요한 단어만 골라 쓴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압도적이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문장에서 묘한 따스함을 느꼈다.

빌이 딸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며 주고받는 짧은 대화조차도 그들의 관계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아빠, 크리스마스에는 선물 줄 거죠?”

딸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장면은 어떤 거창한 장면보다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아버지가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부모의 사랑 아니겠는가.

나에게 남은 울림


이 책은 분명히 작은 이야기다. 거대한 사건이나 놀라운 반전이 있는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빌처럼 나도 가끔씩 눈을 감고 넘어가는 것들이 많다. 사소한 일이라 치부하며 외면했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꿀 만한 의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며 내 삶을 돌아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나 자신과 내 가족만을 챙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빌의 행동은 내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사소해 보일지라도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이 책을 추천하며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이 계절에 딱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단순히 따뜻한 이야기를 찾는 사람에게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은 읽는 이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나처럼 40대 중반을 살아가며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책은 분명히 작은 이야기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은 사소한 것들이며, 그것이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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