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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서평)

한강 - "소년이 온다." 서평

by 머니바다 2024.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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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장편소설 - 소년이 온다

 

한강 - "소년이 온다." 서평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인간이 겪는 극한의 고통과 폭력, 그리고 그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이 마주하는 비극적인 현실을 깊이 탐구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이 남긴 깊은 상처와 잊히지 않는 기억을 무겁고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주목받으며,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중요한 순간을 세계 문학 무대에서 새롭게 조명받게 되었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은 동호라는 소년이다. 그는 광주의 한 인쇄소에서 일하며 고등학생 친구들과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시위는 곧 군부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해 참혹한 상황으로 변해버리고, 동호는 친구를 잃고 자신도 커다란 상처를 입는다. 이 소설은 동호를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며, 그들은 모두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의 피해자이자 목격자다. 한강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개인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크고, 그 고통이 결코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강의 문체는 시적이면서도 날카롭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폭력과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그 표현이 지나치게 노골적이지 않다. 오히려 절제된 언어 속에서 더욱 강렬한 감정이 전해진다. 특히, 죽음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강은 직접적으로 그 참혹함을 묘사하기보다는, 그 순간을 겪는 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파고든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단순히 사건을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경험하는 인물들과 함께 그 고통을 느끼게 된다.

 

작품의 구조는 여러 인물의 시점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각 인물의 시선은 그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한다. 동호를 기억하는 친구, 가족, 그리고 그 사건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시점에서 광주의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다층적인 서술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사건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들며, 각 인물이 겪는 상실과 고통을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이는 한강이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이 인간에게 남긴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에 더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고통과 기억에 대한 탐구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고통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묻는다. 동호와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기억한다. 어떤 이는 그 기억을 잊으려 하고, 어떤 이는 그 기억에 얽매여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것은, 그 고통이 결코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강은 이를 통해 고통을 외면하려 해도, 그 고통은 우리 안에 남아 우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주장한다.

 

또한, 이 소설은 생존자들의 죄책감을 깊이 다루고 있다. 동호의 어머니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왜 자신이 살아남았는지, 죽은 자들을 대신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된 생존자들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한강은 생존이 단순한 기쁨이나 축복이 아니라, 때로는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이로 인해 생겨나는 심리적 고통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낸다.

 

『소년이 온다』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 중 하나를 다루고 있지만, 그 어둠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연대의 가치를 발견하고자 한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비록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잔인하게 죽어갔지만, 그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그들의 희생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을 말하고 있다. 이 희생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야말로 한강이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한강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침묵의 힘이다. 이 작품은 고통과 폭력을 다루면서도, 그 모든 것을 침묵 속에서 표현한다. 한강은 말하지 않는 것, 침묵 속에 숨겨진 감정을 통해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는 그녀의 문체가 가진 힘 중 하나로, 독자는 그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폭력을 겪은 사람들은 그 고통을 말로 풀어낼 수 없을 만큼 크고 깊기 때문에, 그 침묵이야말로 그들의 상처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또한, 한강은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회복력 희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광주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살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죽은 자들을 기억하며, 살아남은 자들은 그 기억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사회를 꿈꾼다. 한강은 인간이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이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소년이 온다』는 그저 하나의 역사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역사 속에서 잊혀져서는 안 될 사람들, 그들의 고통과 희생을 기리며, 우리가 그들의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지를 묻고 있다. 한강은 이 소설을 통해,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이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강하게 말한다.

 

결국,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우리에게 광주의 비극을 다시금 기억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찾으려는 작가의 진지한 노력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국 현대사에 대한 기록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를 담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한국 문학을 넘어 세계 문학에서도 큰 울림을 주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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