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 서평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서사적 깊이와 정서적 강렬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역사의 상처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 주제 의식이 한강 특유의 시적 문체와 만나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2021년 9월 9일에 출판된 이 소설은 한강이 2023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24년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통해 한강은 한국 현대사의 잊힌 목소리를 다시금 불러내며, 그들이 겪은 고통과 상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애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주인공 경하와 인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경하는 제주 4·3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그 비극적 역사의 흔적 속에서 인선과의 인연을 통해 점점 더 깊이 사건 속으로 빠져든다. 인선은 자신의 가족이 이 사건으로 인해 처참히 파괴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제주에서 벌어진 학살 속에서 가족을 잃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선의 이야기는 한강의 문학에서 자주 다뤄온 고통과 상실, 그리고 기억의 지속성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인선은 가족을 잃은 후에도 그들과 작별하지 못하고, 그 상처를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비극을 넘어서, 역사의 무게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고통을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눈과 폭설이라는 이미지의 반복적 사용이다. 소설 속에서 눈은 역사의 진실을 덮어버리려는 듯이 끊임없이 쏟아지지만, 그 안에서도 인물들은 그 진실을 찾아나가려고 한다. 눈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경하와 인선의 모습은 그들이 잃어버린 것들과의 작별을 할 수 없음을 상징한다. 폭설은 진실을 덮으려 하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더욱 뚜렷해지는 기억과 상실의 무게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한강은 이러한 상징을 통해 독자에게 비극적 역사를 마주하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한다.
또한, 경하와 인선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그 상처와 맞서며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통해 조금씩 위로받는다. 경하는 인선이 겪은 비극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려 한다. 이는 이 소설이 다루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연대와 사랑의 표현이다. 인간은 혼자서 상처를 견딜 수 없으며,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공감함으로써 비로소 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강의 문체는 이 소설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한강은 절제된 언어와 시적인 표현으로 독자의 감정을 깊이 끌어내며, 직접적으로 고통을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그 감정의 깊이를 전달한다. 그녀의 글은 인물들이 느끼는 고통과 상실을 극대화하면서도, 그것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이러한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그 상처의 무게를 느끼게 하며, 인물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경험하게 만든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역사적 재현이 아닌, 인간의 본질적인 고통과 기억, 사랑에 대한 깊은 탐구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잊힌 역사적 비극을 되새기며,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이 소설은 한강이 그동안 꾸준히 탐구해 온 주제들—특히 고통과 상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더욱 깊이 있게 확장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한강은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작별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 우리는 상실과 작별을 경험하면서도, 그것이 우리 삶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경하와 인선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이 잃어버린 것들과 다시 마주하고, 그 상처 속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간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 한국 현대사 속에서 잃어버린 사람들, 잊힌 목소리들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도를 담고 있다.
결국, 『작별하지 않는다』는 비극적인 역사적 상처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한강의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슬픔이나 상실의 이야기가 아닌, 그 고통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다. 한강은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이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통해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작별하지 않는 것, 그것은 결국 우리가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할 것들에 대한 다짐이자,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선언이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깊이와 무게에서 오는 울림이 크다. 역사의 상처와 개인의 상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애를 섬세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우리의 고통과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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