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서평)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서평

by 머니바다 2024. 12. 2.
반응형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서평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철학 수업

내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는 마흔 즈음이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며, 직장에서 안정된 위치를 갖췄다고 생각했지만, 그 안정감이 역설적으로 공허함으로 다가오던 때였다. 모든 게 자리를 잡은 것 같았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 답을 찾지 못해 좌절하고 있었다.

그런 날들 속에서 우연히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라는 책을 만났다. 사실 나는 철학에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철학’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어렵고 멀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내 현실과는 동떨어진 학문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묘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마흔, 그리고 위기. 내 상황과 어쩌면 이렇게 꼭 들어맞을 수 있을까?

처음 책장을 넘기며 느낀 건 저자 강용수의 문체였다. 쇼펜하우어라는 이름만 들으면 딱딱하고 추상적인 논의가 펼쳐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 책은 마치 친한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차근차근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들려주는 것처럼 다가왔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단순히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녹여내어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 점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와닿았다.

책의 여러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삶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이었다. 고통은 우리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 그 자체라는 것. 특히 "우리는 고통을 없애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그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대목은 내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항상 삶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어왔는데, 사실... 문제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책 속 한 구절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인생은 괴로움과 지루함 사이를 진동하는 시계추와 같다. 우리는 괴로움 속에서 더 나은 내일을 꿈꾸지만, 더 나아진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괴로움을 덜어낸 자리에 지루함이 자리할 뿐이다."

이 말은 처음엔 무척 비관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말속에 숨겨진 진실은 무거운 위로를 주었다. 삶이란 본질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며, 그 고통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려고 애쓸수록 더 깊은 공허 속으로 빠져든다는 사실. 나는 어쩌면 행복을 쫓아가며 고통을 억지로 피하려고만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삶이 결국 더 큰 괴로움을 만들어냈던 건 아닐까?

책을 읽으며 내 삶의 태도를 조금씩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즉각적으로 그것을 제거하려고 하기보다는, 잠시 멈춰서 "이 문제가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를 물어보았다. 쇼펜하우어는 고통이 단순히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나는 고통을 나쁜 감정으로만 여기고 외면하려 했지만, 이제는 그 고통 속에서 작은 배움이라도 건져내려고 노력한다.

이 책은 단순히 철학에 대한 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거울이었고,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연장이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물론 비관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비관 속에는 깊은 통찰과 현실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담겨 있다. 고통을 없애겠다는 헛된 희망 대신, 고통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를 묻는 이 철학은 내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삶을 재정비할 때라는 말이 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그런 나이에 꼭 맞는 책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혼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나만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쇼펜하우어처럼 위대한 철학자조차 삶의 고통을 똑같이 마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했다.

책을 덮으며 나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사람이었다. 문제와 고통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바뀌었고, 덕분에 내 삶도 조금 더 단단해졌다. 이 책은 단순히 읽는 것으로 끝나는 책이 아니다. 내 삶의 매 순간, 내가 맞닥뜨리는 고비마다 다시금 꺼내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마흔이 아니라 쉰, 예순에도 이 책은 여전히 내게 새로운 통찰을 줄 것이라 믿는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통해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삶의 위기를 마주하는 또 다른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앞으로의 삶에서 나를 지탱해 줄 한 조각 지혜로 간직할 것이다.


반응형